우리 다함께 프란츠 리스트를 헐리우드로!... 응? sound of music

내가 헐리우드에서 힘 좀 쓰는 감독이라면 꼭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내가 아는 한 프란츠 리스트라는 인물이 등장이라도 하는 영화는 1975년에 The Who의 로저 달트리가 주연한, 도무지 맨정신으로는 보기 힘든 'Lisztomania'란 영화 한 편이 전부이다. 리스트가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모짜르트나 베토벤만큼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라는 걸 감안해도 저 영화는 너무했다. 'Amadeus'나 'Immortal Beloved' 급은 아니더라도, 헐리우드건 유럽 본토건 이렇게 매력적인 인물을 갖고 제대로 된 영화 한 편 못 만든다는 건 정말 문제있음. 심지어 천하의 상찌질이 로버트 슈만도 영화 'Geliebte Clara' 덕분에 고뇌에 찬 비극의 주인공으로 스크린에서 부활할 수 있었건만.

살펴보면 리스트의 생애는 처음부터 끝까지 헐리우드가 군침흘릴 만한 소재들을 모조리 섭렵하고 있다. 일단 잘생겼고, 작곡과 연주 모든 면에서 마이클 잭슨에 버금가는 천재이자 수퍼스타였으며 인품까지 젠틀해 주변에 여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또 한 명의 천재 쇼팽과의 묘한 라이벌 구도에 더불어 유부녀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이 진한 로맨스의 축을 이룬다. 그런데 주인공 이 남자는 부와 명예의 최고점에서도 신을 향한 자신의 사명과 조국 헝가리에 대한 애국심, 민족애를 끝내 잃지 않았다! (이쯤되면 무협지.. 시발, 다 갖췄어 이건!) 게다가 절친이란 사람들이 멘델스존, 생상, 베를리오즈, 훗날 사위가 되는 바그너와 빅토르 위고, 하이네, 동화작가 안데르센 등등. 영화의 배경으로 부다페스트부터 파리, 베를린, 로마, 전 유럽의 입이 떡 벌어질 풍경들은 요리조리 다 골라쓸 수 있고 무엇보다도 OST는... 이 영화의 OST라면 벌써부터 서곡으로 무엇을 쓰며 리사이틀 장면에는, 베드씬과 이별 씬에는 또 무엇을 쓸지, 엔딩 크레딧엔 뭘 깔아줄지 생각만 해도 너무 가슴 설레지 않냔 말이다! 리스트는 피아노 독주곡은 말할 것도 없고 교향곡, 오페라까지 만든 사람인데!
(실제 리스트의 리사이틀이 대략 이런 분위기였다고.)

상상을 좀 더 구체화시키자면 리스트 역으로는 일단 인물 훤칠하고 호리호리하면서도 좀 옴므 파탈 기질이 보이는 배우가 제격인데, 이 대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주드 로. 심지어 리스트와 묘하게 닮기까지 했다. (머리만 안 빠졌어도 정말 딱이었을 텐데.) 그리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지만 브래들리 쿠퍼도 은근 잘 어울릴 듯한데 미국인이 리스트 역을 소화하는 걸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줄진... 혹은 정말로 헝가리 출신의,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로컬 스타를 발굴해내는 모험을 감행할 수도 있고. 리스트의 일생의 사랑이라 할 여자가 둘이나 있고, 코지마와 바그너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으니 미녀 배우는 감독이 원하는 만큼 무더기로 등장시킬 수 있음. 여기에 찌질이 프레데릭, 샤방샤방 펠릭스, 정신줄 오락가락하는 로베르토 역을 감초처럼 넣어 서포팅 롤에서 잔뼈 굵은 젊은 배우들을 붙여주면, 이건 충분히 초호화 캐스팅 영화가 될 수 있다! (벌써부터 군침 줄줄.)
(근데 리스트 역에 주드 로는 정말 잘 어울릴 듯.)

사실 누군가가 리스트의 삶을 영화화하는 작업을 실현시킨다 할지라도 영화의 제작 방향이 어떻게 흘러갈진 예측하기 힘들다.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 비트겐슈타인 부인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순정남의 이미지에만 포커스를 두어도 제법 잘 짜여진 19세기판 로맨틱 코미디가 될 수 있고, 혹은 철저하게 피아노 황제의 삶을 재조명하는 오타쿠적 관점에서 보아도 'Shine'이나 'Amadeus' 못지않은 그럴싸한 음악영화를 만들어낼 재료가 풍성하다. 하지만 어차피 상상하는 거 좀 더 욕심을 내본다면, 그의 전생애를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주며 음악이나 스캔들 못지않게 정치, 문화, 종교계의 변화들을 함께 보여주며 동시대 유로피안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했는가를 엿볼 수 있는 장대한 '에픽'으로 만든다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가장 앞선다.

실제 리스트는 서구인들이 그토록 자부심을 갖는 진짜 신사의 표본이었다. 모든 걸 갖춘 사람이었으면서도 결코 어려운 친구들을 저버린 적이 없었고, 유럽 전체를 뒤흔드는 인기를 누렸으면서도 철저한 자기관리와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후학을 양성했다. 잊혀져가는 보헤미안의 옛 멜로디들을 되살려 조국의 이름을 딴 헝가리안 랩소디로 승화시킨 사람도 그였다. 이만큼 뜨겁게, 열심히, 그리고 아름답게 자기 삶을 살다간 사람들이 인류 역사에 몇이나 될까? 최근 해리 포터나 트와일라잇 같은 판타지물의 인기가 서서히 사그라들면서 헐리우드에도 슬슬 소재고갈론이 등장하는 모양인데, 이럴 때일수록 스티브 잡스 같은 이를 스크린에 옮겨담는 근시안적발상 대신 고전에서 답을 찾는 예술인들이 좀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순히 내가 시대극(정확히는 전기 영화)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들의 삶은 아무리 곱씹어 캐내봐도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를 느끼게 하고, 가슴 속의 그 무언가를 격하게 요동치게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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